steven

팀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

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건 완벽한 구조 위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. 빠진 곳이 있고, 보이면 메꾸는 거다. 나는 그게 팀 게임이라고 생각했다. 다른 사람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일하는 방식이라고. 구조적으로 공백이 있었고, 그걸 채우려고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. 개발 쪽에서 할 수 있는 게 늘어난 만큼 다른 영역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. 근데 요즘 드는 생각이, 내딴에는 선의로 한 일이라도 상대방에게는 다르게 닿을 수 있다는 거다. 도움을 주려 한 건데 그게 오히려 압박이 되거나, 자기 자리를 침범당하는 느낌이 될 수도 있잖아.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다. 전부 내 지레짐작이다. 근데 근거도 없는 자책이 제일 다루기 어렵다. 반박할 수도, 확인할 수도 없으니까.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. 올바른 건 아니지만 틀린 건 아니었다. 회사 생활에는 이런 어중간한 영역의 일들이 많고, 그게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.

솔직히 좀 억울하다.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자책감이 드는 것. 잘못하지 않았는데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 것. 사람마다 성장에 쏟는 에너지가 다르다. 나는 주어진 시간에 더 학습하고 싶고 더 만들어보고 싶은 쪽이다. 그런데 그 기준을 남에게 강요할 수 없듯이, 남의 기준이 나에게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. 이건 누구를 탓하는 이야기가 아니다. 팀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지점이 온다는 이야기다. 지금 하고 싶은 건 쏟아온 에너지를 돌아보는 거다. 후회가 아니라 점검. 방향은 맞았는지, 양은 적절했는지. 열심히 하는 게 늘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. 그걸 알면서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면, 적어도 지치는 방식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.

AI가 개발 생산성에 지대한 영향을 줬는지는 더 지켜봐야 안다. 확실한 건 속도의 압축이 일어났다는 것. 그런데 그 압축이 개발에만 국한되는 건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. 게임을 이해하는 사람이 개발자에 많을 뿐이지, 개발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을 거다.